혼자여서 외롭지 않았던 2007년 12월의 쿠바

공산주의란 건 어떤 것일까 생각했던 혼자만의 여행

혼자여서 외롭지 않았던 여행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너무나 많은 것을 받아온 여행

 

(작성중)

 

 

 

비냘레스 - 길 가는 나에게 작고 좁은 집에 초대해주셨던 할머니 할아버지

배급받으시는 바나나를 한껏 주시고, 티비가 있다며 자랑하시던 순수하셨던 분들이었다.

(필름이 노광되면서 사진의 1/3 이 날라가버려서 너무 아쉬움)

 

 

 

 

산타 클라라. 이곳에서는 올드카를 타고 이쪽 저쪽으로 많이도 움직였다.

시엔푸에고스까지는 네덜란드에서 온 아가씨 두명과 같이 갔고,

레메디오스까지 가는 교통편에는 쿠바인을 고용해서 갔었는데,

산타클라라 대학에서 공부하는 북한 학생들에 대한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트리니다드에서 얀꼰비치로 가는 길 옆에 있는 바다

비냘레스 서쪽 마리아 라 고르다도 이곳도 마찬가지로 바다색이 너무 맑고 투명했다.

출국날 쿠바 공항에서 만난 쿠바인은 나중에 꼭 까요 라르고 (라르고 섬) 으로 가보라는 얘기를;;

 

 

 

 

트리니다드의 메인 광장을 벗어나 휘적휘적 걷다가 잔잔한 음악소리가 들리길래 들어왔던 바

럼이 섞인 음료를 마시면서 노래소리를 들으면서 이곳 사람들의 관심도 받으면서 보냈던 시간이 소박하고 좋았다.

 

 

 

 

공산주의 체제하의 상점.

공산주의 체제의 상점은 이렇게 진열장에 물건이 별로 없었고

엄마 손을 잡고 문밖을 나가던 소년은 한쪽 팔이 없는 아저씨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이곳 사람들의 집 색깔은 연분홍, 연노랑, 연초록 등등의 파스텔 톤으로 가득했다.

한참 집을 연분홍으로 칠하던 아저씨 사진을 찍고 있으니 웃음을 잔뜩 띠고 내게 인사를;

 

 

 

 

트리니다드에서 가장 핵심적인 건물.

파스텔톤의 집 사이로 놓인 cobblestone 길을 걷다가

만화의 한장면처럼 눈 앞에 펼쳐진 교회.

 

 

 

 

너무나 달콤하던 오렌지는 이렇게 직접 까서 팔고 계셨다.

오렌지 껍질 따위 그냥 길에 버려도 상관은 없지.

하지만 다른 쓰레기들은 새벽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다 나와서 깨끗이 치우던 모습.

공산주의 (어쩌면 공산주의와 연결된 전체주의?) 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갑작스러운 스콜이 지나간 뒤, 트리니다드의 하늘은 너무나 역동적이었다.

 

 

 

 

트리니다드에서 증기기차를 타고 과거 노예를 부리던 농장을 가는 것은 꽤나 매력적인 액티비티였다.

노예를 감시하던 감시탑은 주위를 다 볼 수 있을만큼 압도적으로 높았는데,

2016년 지금도 오를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불안불안했던 것은 사실이다.

 

 

 

 

cobblestone 이 깔린 트리니다드의 길과 오래된 파스텔톤의 집

 

 

 

 

체게바라의 마을 (왜 체게바라의 마을이 된 건지는 기억이 잘;;) 산타 클라라

소박한 빵 장수의 빵을 손녀를 데리고 나온 할머니가 구입하고 있다.

평범하고 소박한 쿠바의 모습이었다.

 

 

 

 

하바나에 있는 체게바라

공산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모습. 넓은 도로, 각지고 콘크리트 냄새 물씬 나는 건물.

그 곳을 체게바라가 장식해주고 있다.

 

 

 

 

하바나에 있는 미국 대사관 (?) 앞에 있는 검정색 깃발들

2016년에 미국과의 화해모드가 진행되어 이런 모습을 더이상 볼 수는 없을테지만

2007년만 해도 하바나에 왜 있는 지 모르겠는 미국 관저 앞에는

검정색 깃발을 달아놓고 여러 가지 프로파겐더가 놓여있었다.

재밌는 건 하바나의 일반 가정집에서는 미국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는 점!

 

 

 

 

하바나의 오후.

이주간의 여행이 끝나갈 무렵, 파스텔톤의 집들은 더이상 새롭지 않았고

그 속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들이 더 깊이 들어왔었다.

경찰은 일반 주택가를 두리번거리면서 걷고 있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꽤나 일찍 없어졌던 하바나의 명물 낙타 버스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낙타버스는 2007년만 해도 말짱히 운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서울의 파란색 143번 버스도 하바나에서 목격되었다. 어떻게 갔던 거지?

 

 

 

 

 

하바나에 대규모 장이 서는 날.

이 날이 일요일이었던가.

지방에서 트럭에 바나나나 여러 채소를 잔뜩 싣고 올라온 것으로 보였다.

큰 길을 막고 하바나의 사람들은 리어카를 끌고 나와 이것들을 구입하고 있었다. 

 

 

 

 

 

 

파스텔톤의 집과 파란 하늘, 이것만이 트리니다드의 모습은 아니었다.

cobblestone 이 깔린 길은 어떤 색이 없어도 석양에 아름답게 반짝였다.

 

 

 

 

사탕수수를 이용해서 음료를 만들던 모습.

사탕수수를 쪼개고 뭉친 뒤 짜내는 기계에 넣고 돌리면

설탕물이 흘러나온다.

달달한 천연 음료

 

이런 모습을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도 목격할 수 있었다.

다만 향신료의 잔지바르답게 설탕물에 박하 첨가!

 

 

 

 

노예들을 감시하던 탑이 있는 곳에는

위에서 보이는 것보다 본격적인 설탕물 만들기가 가능했다.

왠지 소가 돌아가면서 짜내야 할 듯한 사이즈의 큰 기계

 

 

 

 

하지만 이 아저씨 한분이면 충분했다는 점.

카메라 앞에서의 편안한 모습들이 너무 깊이 남았던 쿠바 여행이었다.

 

 

 

 

 

 

사탕수수 농장들이 있던 (노예를 이용했던) 잉헤니오스 계곡을 하는 여행은

증기기관차를 타고 과거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도중에 개울에서 물을 퍼올리는 모습도 볼 수 있고,

객차마다 돌아다니며 음악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분도 만날 수 있고,

기차 운전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기회도 있다는 사실!

 

잠시 기차가 멈추었을 때, 앞으로 갈 사람을 묻길래 주저없이 손을 들었다.

불을 떼는 곳을 보여주고, 기적소리를 울려보라고 끈을 쥐어주시던 기장님!

뜨거웠지만, 내가 기차의 기적소리를 울리는 경험은 또 얼마나 재미있던지;

 

 

 

 

동네 폭주족쯤이 되려나.

말을 타고 나타난 동네 젊은 아이들.

 

 

 

 

작은 상점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사진을 찍어달라며 나를 불렀다.

들어가보니 사진에 담고 싶은 점원의 손님(위 사진에 나오신 분)을 만나버렸던 거다.

카메라를 꺼내들고 "포토?" 라고 했더니 이분은 "레이디스" 라며 한걸음 물러나셨다.

점원분들 사진 찍고난 다음에, 편안한 웃음으로 내 카메라 앞에 서셨던 이분 표정을 보면

내가 쿠바를 사랑하는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바나에서 만난 사진을 전공하는 하바나 대학생

이 친구는 하바나에서 아니 쿠바에서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었다!!!!

사진으로 공통점을 찾은 우리는 20여분을 얘기하며 걸었고,

이 친구는 자신의 사진 앞에서 자신을 찍는 것을 허락했다.

 

나도 이 친구의 카메라에 담겼었는데, 아직까지 남아 있을 지 의문이다.

 

 

 

 

쿠바의 혁명에는 체게바라와 함께 피델카스트로가 있었다.

주로 체게바라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만

시엔푸에고스의 골목 한켠에는 피델이 그려져있었고, 혁명! 이라고 적혀 있었다.

혁명과 왠지 괴리감이 느껴지게 마을 사람들은 말이 끄는 마차를 대중교통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오래된 과거에 멈춰있는 쿠바 사람들, 그리고 쿠바의 상징인 파스텔톤의 올드카.

바쁘게 이쪽 저쪽 움직이고 있는 관광객들.

이 사진의 의미는 바로 그런 것이었는데 많이 알아주지 못해서 아쉽다.

 

 

 

 

치노, 치노.. 쿠바에서 굉장히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아무래도 중국과의 교류가 많은 곳이다보니 아시아인이라면 무조건 Chino, Chino.

얀꼰 비치로 가는 길 옆에 작은 바에서는 별명이 치노인 아저씨 (중국인같이 생긴..) 가 술을 팔고 있었다.

나는 부카네로 한잔을 사마시고, 이사람들이 주는 럼을 한잔 하고 뙤약볕을 자전거로 질주했다.

 

 

 

 

하바나는 나름대로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새장과 새를 파는 상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하바나에 처음 들어섰을 때는 적어도 20~30년 전으로 돌아가버린 느낌에

모든 것들이 다 신기했고, 심장이 쿵쾅댔다.

그것도 시간이 지나다보니 금세 적응되었지만;;

 

 

 

 

 

 

하바나 비에하 (올드 하바나) 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

이 앞 광장에서 유명하다던 쿠바의 예술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오페라의 유령" 을 발레로 표현한 작품.

발레를 잘 모르지만, 꽤나 앞에 앉아 공산주의의 예술에 대해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공산주의는 예술과 문화에 생각외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되었다.

 

 

 

 

하바나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쿠바 사람들과 한 발 더 다가가려고 했던 여행이었다.

사진을 찍겠다면 절대 피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계속 부르면서 사진을 찍어달라 하시던 분들도 참 많았다.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떻게 공산주의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북한의 모습은 이와 분명 다르겠지만 북한이 공산주의 나라라고 할 자격이나 되는 나라던가.

 

 

 

 

 

 

비냘레스 서쪽의 마리아 라 고르다를 다녀온 오후에

비냘레스에서는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잔치에는 먹을 것이 빠질 수 없고, 어린 아이들을 위한 간단한 놀이기구도 빠질 수 없다.

하바나에서 시엔푸에고스를 가는 길에 고속버스에서 쿠바를 탈출해 하바드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시세르를 만났었다.

그 친구에게 공산주의의 실상, 쿠바라는 나라 등 너무 많은 얘기를 들었다.

비냘레스에서 아침마다 닭들이 울어대서 잠을 잘 수 없었다는 얘기를 하자

시세르는, 아. 쿠바가 그래도 살림이 나아졌구나 라고 하며 좋아했다.

작은 참 작은 마을 비냘레스는 푸근하면서도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했던 마을이었다.

 

 

 

 

 

비냘레스의 시골길을 걷다가 담배농사를 짓는 농부들을 만났다.

담배를 피냐며 나한테 그 자리에서 담뱃잎을 뚝 끊어다가 시가를 말아주는데,

담배를 피지 않는 나는 그냥 쳐다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자 술은 마시냐면서 나한테 당신들이 마시던 양철컵에 럼주를 가득 담아주었다.

그것을 받아마시고 있으니, 자신들이 쓰던 모자를 내게 씌워주며 사진을 찍어주셨더랬다.

 

그리고 내가 사진을 찍을 때, 모두가 밝은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서주셨다.

비록 몇몇은 이렇게 얼굴도 제대로 안나왔지만 말이다. ㅠㅠ

 

 

 

 

자메이카의 레드 스트라이프라는 맥주를 좋아한다.

멕시코의 맥주도 아주 좋아한다.

중남미의 맥주는 일단 한번은 먹어보아야 하는 것인 거 같다.

쿠바에서는 이렇게 자동차가 와서 맥주를 팔았다.

안타깝게 맛은 보지 못했다.  

 

 

 

 

 

 

 

 

 

 

 

이 위의 세 사진은 참 할 말이 많은 사진들이다.

레메디오스라고 산타클라라에서 한시간 가량 북쪽으로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도시이다.

도시라고 하기에는 매우 작은 마을같은 곳인데,

여행책자에는 이곳의 축제가 매우 유명하다고 쓰여있었다.

그런데 날짜가 일정치 않아서 대중교통도 딱히 없는 이곳에서 섣불리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산타클라라의 까사 아줌마는 내가 도착한 날 레메디오스에서 축제가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을 제쳐두고 광장에서 택시를 하나 대절했다.

그리고 달려간 레메디오스.

 

성탄절에 성당에 오는 것을 독려하는 목적으로 동네를 시끌벅적하게 돌아다니던 것이 유래가 되어

시작된 축제.

무엇보다 굉장히 오래된 불꽃놀이가 매우 유명한 축제였다.

봉으로 만들어진 불꽃놀이용 불꽃들이 도미노처럼 광장을 죽 두르고 있었고

한쪽에서 시작된 불꽃은 정말 와일드하게 터져나갔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불꽃놀이를 동영상으로 담고 있는데

주머니속으로 쑥 들어오는 손이 느껴졌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가는 느낌이 있으면 바로 붙잡으려고 가만히 있었다.

주머니 속에는 필름 카메라와 필름이 들어있었는데, 소매치기들은 이것들에는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아무런 문제 없이 끝나버린 작은 해프닝.

 

이 불꽃놀이는 아직까지도 생각하면 와일드하고 짜릿하다.

그리고 이어진 대규모 퍼레이드

치노 치노를 외치며 나에게 럼을 건네고,

택시 운전기사는 자기가 받은 돈이 많은지 나에게 쿠바식 샌드위치를 사주었다.

말이 통했으면 더 재밌게 놀 수도 있었을 법한 레메디오스의 멋진 축제

 

난 그래서 저 위의 세 사진을 너무 좋아한다.

 

 

 

 

 

 

 

 

 

 

 

 

 

 

 

 

 

 

 

 

 

 

 

 

 

 

한참을 막연히 아름답게만 보던 쿠바 여행은 트리니다드에서 환상을 깨고말았다.

저 길에 보이는 CDR 이라는 글자는 공산주의에서 하는 지역공동체 형태로 서로 감시하는 그런 것을 의미한다.

그것보다도, 트리니다드의 마지막 날

한 분이 배급받아온 곡물을 바로 이 앞에서 쏟고 말았던 것이다.

돌 사이 사이에 박히면서 떨어진 곡물 알갱이를 한참을 줍고 계시던 모습을 보고

나는 한대 얻어맞은 듯이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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